
이재환 개인전
미로
2023.3.27.- 4.9
명당갤러리(충남 공주시 사곡면 명당안터길 71)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 새로운 경로를 개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있던 길을 찾는 것인데도 어려울 때가 많다. 높이 나는 짐승이 아니라 낮게 뒹구는 인간의 시선에서는 코앞의 길도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때 해 볼 수 있는 건, 정확한 지도를 구하는 것, 그 지도를 읽는 법을 열심히 훈련하는 것만이 아니다. 열린 길의 좌표를 읽어가는 대신 닫힌 벽의 완강함을 재차 확인해 볼 수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여기도 막혔구나, 저기도 막혔구나 한숨을 쉬며 돌아설 때 벽에 부딪혔던 몸의 기억을 떠올려보게 된다. 몸이 부르르 떨려 화가 날 때, 반대의 기운이 어디서 왔는지, 왜 다시 몸을 일으켰는지도 떠올려 본다.
그런데 길은 낮거나 높은 벽들로 이루어진 경우도 많다. 어쩌면 벽 위를 걸으며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이렇게 덜 비장해진 것이 삶에 가벼워진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쯤 벽에 물고기를 그려본다. 개구리도 그리고 개미도 그린다. 구슬도 굴려본다. 구슬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좋다. 물고기가 웃고 개구리가 뛴다. 원래 가던 길 혹은 벽 위에서 직접 그린 그림들이 살아가는 걸 본다.
다음 그림에 담기고 싶은 참새, 강아지, 지렁이, 고양이, 소, 쥐, 그리고 사람들도 슬금슬금 뒤따른다. 벽에서 튕겨 나온 몸을 가볍게 받아 헹가래라도 쳐줄 것처럼. 앞으로 열리는 길을 찾다가, 발걸음 뒤로 열리는 긴 길을 본다.
계속 걸어갈 이유들이 행진하듯 길게 길게 이어진다.
(글/유구리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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